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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겨울에 찾아온 자판기 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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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김시현 2024. 7. 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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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겨울은 30대 초반부터 혹독하게 찾아왔다

 
당시 나는 내가 누군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었고
 
돈도 없었고 직장도 그만뒀고 친구들도 떠나고 가족들의 비난에 시달리고
 
오직 독서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었던 시절이다.
 
내가 다녔던 도서관은 좀 오래전에 산 중턱에 지어진 도서관인데
 
크기만큼 겨울에는 추위에 시달려야 하는 곳이었다.
 
모르겠다. 실제로 도서관이 추웠던 것인지 내 마음이 얼어붙어서 추위가 강하게 느껴진건지.
 
나는 얼어붙은 마음을 철학고전과 함께 10여권의 책을 쌓아두고 읽으며 필사하는 것으로 녹이고 있었고
 
물리적인 따뜻함이 필요하면 도서관 4층에 있는 자판기 우유를 뽑아 먹었다.
 
자판기의 애용자라 가끔 자판기 관리를 하러 오는 여사님을 볼 기회가 자주 있었다.
 
야무진 손 끝으로 자판기 내용물을 채워 넣으시고 깔끔하게 자판기 관리를 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중한 우유를 먹으러 넣은 동전 150원을 자판기가 먹어 버린 사건이 발생한다.
 
150원이 아깝긴 했지만, 자판기 우유의 온기라도 없으면 얼어죽을 것 같은 추운 날이라서
 
다시 150원을 넣고 버튼을 눌러도 우유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자판기 우유가 너무나 간절했기에, 자판기 중간에 스티커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자판기 관리 여사님은 근처에 계셨고 고장난 자판기는 금새 고쳐졌다.
 
자판기 여사님은 나에게 300원을 돌려주셨고, 우유를 한 잔 뽑아 내 손에 건네 주셨다.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내 마음이 얼어붙어 있었다는걸 이해한다는 따뜻한 눈길로 건네는 자판기 우유의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자판기 여사님이 건넨 150원 자판기 우유는 강철 추위도 녹여 버린 마법의 우유가 되었다.
 
10년이 지난 일을 기억하게 만드는 자판기 여사님의 따뜻한 마음은
 
내가 그 추운 겨울날 새벽 7시부터 밤 12시까지 도서관에서 독서와 필사에 전념하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여사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오늘도 여사님은 추운 도서관에서 따뜻한 봄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녹여주고 계신가요...